독서토론. 그리고 자기표현.
----2001.12.6.----
독서토론 하고 나서 제 생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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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 그리고 자기표현.
-자기표현 10기 이충구
학기초였다. 입학한지 갓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내 손에는 ‘자기표현’이 찍힌 하얀 봉투가 있었고, 그 속엔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꽤 익숙한 문자가 적혀 있었다. 설레임은 그때부터였다.
독. 서. 토. 론.
스무살 고개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학기가 지나 광염소나타가 되었고 지금도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글쎄? 나는 ‘토론’ 보다 ‘이야기’ 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든다. 강요된 주제도, 강제된 얼버무림도, 꾸며낸 진실도 그곳엔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솔직히 처음에는 고등학교때 잠깐 접했던 토론 수업과 그다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토론 대상이 문학작품-소설이라는 것 이외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대상이 어렵다는 핑계로 ‘나’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회를 거듭해 가며 조금씩 내 안의 나를 찾고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낙동강. 황토기. 황노인. 제삼 인간형. 솔밭을 뛰어다니던 삼포 가는 길까지. 그 기억 속엔 지식과 이론, 가르침과 배움이 아닌, 하나의 지혜와 둥글게 모인 우리와, 그 안의 내가 있었다. 지금 지나간 독서토론을 한 장 사진으로 꺼내보고자 한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표정으로, 다른 생각을 말했고, 듣고 말하는 귀와 입이 있고 이해하려는 머리는 있으되, 생각의 자물쇠나 그것을 부수려는 망치는 없었다.
여섯번째 소설은 감동인의 광염 소나타였다. 토론의 어색한 주체였던 우리 10기 스스로 독서 토론의 모든 과정을 위임받았던, 그래서 더 깊이 묻어둔 토론이었다. 작품 선정, 준비, 진행. 그러고 보니 정작 떠오르는 건 두어 시간의 결과가 아닌 일주일 남짓 우리 함께 했던 과정이었다.
처음엔 그저 한숨만 나왔다. 흡사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6월 5일이 그러했다. 그것을 어찌 우리끼리 준비 할 수 있단 말인가! 1년 후엔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으나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한 이에게 그것은 너무도 당혹스럽고 냉정했다. 아마 나 혼자 하라고 하였으면 지금의 나라도 분명히 ‘못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열 넷’ 이었기에, 소설 선정을 위해 모였고, 작품 분석을 위해 모였고, 토론 진행을 위해 모일 수 있었다. 그때 누가 무엇을 어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작 우리가 만들어낸 두 시간 역시 자료를 펼치기 전에는 지워져 있다. 생각나는 건 그때 우리가 함께 했다는 것과 그들의 눈빛. 그리고 든든함이다.
아쉬움은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는 것.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스스로 안주했다는 것. 영원히 아쉬울 것 같다.
독서토론! 어쩌면 그것은 자기표현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토론할 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서로의 의견이 비슷할 수는 있어도 억지로 남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그러면서 ‘우리’이다.
나는 나를 찾는 방법으로 ‘우리’를 선택하였다. ‘자기표현’ 안에서. ‘독서토론’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