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잘 다녀왔습니다

달빛나리는 2020. 9. 26. 15:46

----2005.8.24.----

 

 

한 3년만의 모꼬지라 좋았습니다.
예전엔 종종 모꼬지라 했는데, 요즘음 다들 MT라 해서 좋았습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듣던 "소리나는 막대기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떠올라 좋았습니다.
떠나는 날 날씨가 좋아 좋았습니다.
1시보다 몇분 늦게 도착해 대심 캔커피 하나씩 사게 되어 좋았습니다.
오랫만에 경훈이랑 수완이형 봐 좋았습니다.
영모 얼굴만큼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일로 빌린 차가 시간은 좀 늦었지만 출발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모의 소나타를 뒤쫒아가며, "야~이~ 어리버리!"라고 놀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소나타가 이상한 골목으로 들어가 생뚱맞은 아낙네를 내려 놓아 좋았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제대로 웃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뽑으려고 바들바들 떨던 앞 차(소나타)의 손이 좋았습니다.
고속도로가 시원해 좋았습니다.
중간에 들른 E-마트가 좋았습니다.
시식코너가 더 좋았습니다.
카트는 나몰라라 시장 구경온 도시 처녀 같은 우리가 좋았습니다.
흙벽돌집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락이 좋았습니다.
시골 마을에 놀러온 관광객 같아 좋았습니다.
마당에 자갈도 좋았고, 텃밭의 고추와 애호박이 좋았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물놀이하러 가자던 추진력이 좋았습니다.
불어난 물 속에 서슴없이 들어가던 수완이형, 경훈이, 영모가 좋았습니다.
고기밥 될 뻔 한 고기잡이가 좋았습니다.
쓰래기 더미 옆에서 개의치 않고 즐겁게 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모가 잃어버린 신발을 삼킨 물에서 새 신발을 건져준 선배가 있어 좋았습니다.
10시가 넘어 먹은 저녁이 맛있어 좋았습니다.
수완이형이 끓인 동태국(찌개 아님)이라 더 좋았습니다.
싱크대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영모와 재성이가 보기 좋았습니다.
여자 동기 없이 쩔쩔매던 자리를 유경이가 대신해 좋았습니다.
5분만에 유경이, 준래, 종규를 "GG"치게 한 술자리 파도가 좋았습니다.
첫날 준비한 술은 첫날 다 비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밤샘 대신 5시까지 버티게 해 준 왕게임이 좋았습니다.
게임의 히어로 경훈이와 헤로인 지영이가 좋았습니다.
영모는 딱 한번 마지막에 왕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만들어준 왕이라 좋았고, 뒷정리 시키기로 해서 좋았습니다.
술병을 치우게 해 준 제 화투패가 좋았습니다.
그날 11시가 되도록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좋았습니다.
경훈이랑 같이 아침 준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밥 다 해놓고 애들 깨우지 뭐" 한마디가 좋았습니다.
양파가 내뿜는 눈물이 좋았습니다. 한동안 냉동실에 머리 박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간을 수완이형이 봐 주어서 좋았습니다.
한참 먹다가 "어제 동태찌개보다 맛있어요"라는 유경이의 말이 좋았습니다.
날씨가 좋아 오후에도 물놀이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제 그리 사납던 물이 가슴밖에 차지 않아 좋았습니다.
종규는 지영이보다도 더 물을 무서워 해서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모래를 좋아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모래에 묻힌 종규를 위해 큰 가슴, 굵은 팔, 탄탄한 복근, 열개의 다리를 만드는 센스가 좋았습니다.
예전 낙산에서 일이 생각나 좋았습니다.
유경이와 지영이는 물에 빠뜨려 좋았고, 준래와 재성이, 종규는 저네들끼리 빠져 좋았습니다.
물이 차가웠음에도 그 이상 따스한 햇볕이 좋았습니다.
춥다면서도 타는게 더 싫다고 무지개 우산 밑으로 숨은 유경이가 좋았습니다.
개구리를 끔찍이 무서워한 유경이도 좋았고, 그걸 노리는 수완이형도 좋았습니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빛이 너무 고와 좋았습니다.
경훈이와 만든 돌어항이 좋았습니다.
투망질과 족대에 잡혀 준 물고기가 좋았습니다.
끝내 매운탕 거리는 될 수 없어 좋았습니다.
옆에 아저씨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 더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봉황사에서 다이빙하려던 우리를 물리친 확성기 소리가 좋았습니다.
문화재라는 정자 앞의 소주병과 석쇠, 번개탄을 아무도 치우지 않아 좋았습니다.
내일 점심값을 만들기 위한 뽕판이 좋았습니다.
한판이 다 돌도록 씻고있는 여인네가 좋았고, 기다려준 남정네가 좋았습니다.
마당에서 먹는 저녁이 좋았습니다.
고기 굽는이를 즐겁게 해 주기위해 말 한마디 없던 지영이와 종규가 좋았습니다.
삼겹살이 목살보다 맛있다던 유경이와 고기먹을 줄 모른다는 수완이형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고기보다 충동구매 했던 소시지가 맛있어 좋았습니다.
반주로 했던 막걸리가 좋았습니다.
숯에 고구마를 굽다가 나온 군대 얘기가 좋았습니다.
예비역 축에 들어 재성이를 괴롭혀 준 것이 좋았습니다.
반딧불 3천마리를 보기 위해 나선 야간 드라이브가 좋았습니다.
영모 대신 운전한 재성이가 불안한지 경찰차가 따라붙어 좋았습니다.
동네 개들만 짖어대서인지 꼭꼭 숨어버린 반딧불이가 좋았습니다.
둘째날은 일찍 잘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도 10시가 다 되어 어제 순서대로 일어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재미없는 TV를 대신한 MP3 핸드폰이 좋았습니다.
다 함께 한 청소가 좋았고, 부족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게 좋았습니다.
함께 쓰레기를 밟던 준래가 좋았습니다.
아침부터 나와 계신 아주머니와 아저씨, 동네 꼬마가 좋았습니다.
막국수가 맛있어 좋았습니다.
편육이 너무 적어 더 맛있었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주전자 속의 이름모를 차가 맛있어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주유소에서 우왕좌왕하시는 아저씨가 좋았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잠든 지영이가 좋았습니다.
팔에 낙서하는걸 찍어 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해태마트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주고 바로 가버리신 수완이형이 좋았습니다.
"안녕히가세요"란 인사를 3번도 넘게 할 수 밖에 없던 유경이가 좋았습니다.
챙겨온 고구마가 맛있어 좋았습니다.
똑같은 후기를 두번이나 쓰게 되어 좋았습니다.
좋은 모꼬지였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믿었던 디카의 배터리 부족으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해 좋았습니다.
그나마 핸드폰은 술자리만을 찍기 바빠 좋았습니다.
일회용카메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모꼬지에서 기대했던걸 쉬 포기해버린 제가 싫습니다.
그래놓고 아무렇지 않은 제가 싫습니다.
아직까지도 전시회작품 만든다는 핑계로 빈둥대는 제가 싫습니다.
완성하고 나니 아쉬움이 남아 싫습니다.
알바 끝난 경훈이와 내일 도서관 약속을 잡아 싫습니다.
길게 자란 손톱이 갑자기 보기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