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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문

아니,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다.

by 달빛나리는 2020. 10. 13.

----강신주.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中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해서도 안 된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더 억세게, 더 집요하게 매달린 절벽을 잡으려 할 테니 말이다. -略- 돌멩이를 놓는 것은 빈손을 유지하겠다는, 혹은 아무것도 잡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돌멩이를 다시 잡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잡을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略-

결국 삶의 주인과 생계 문제라는 두 가지 변수로 우리 삶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을 듯하다.

첫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그것으로 생계가 유지되는 삶이다(운 좋은 주인으로서의 삶). -略- 둘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출퇴근 노예를 당분간 감당하는 삶이다(불운한 주인으로서의 삶). -略- 셋째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삶이다(운 좋은 노예로서의 삶). -略- 네 번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하며 무조건 취업을 하거나 직장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삶이다(불운한 노예로서의 삶). 이 네 번째 유형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유형은 '운 좋은 노예로서의 삶'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略- 그런데 이 부류의 사람들이 내심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略- 주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일이 요구하는 너무도 큰 희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略-

 

배려나 희생이라는 정신 승리를 통해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고사시켜왔을 뿐이다. 이제 음식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고, 여행을 가도 행복하지 않고, 영화를 봐도 별로 행복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죽을 정도로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무관심한 회색빛 삶이 펼쳐졌을 것이다.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오늘도 같은 무덤덤한 삶 말이다. 이르는 곳마다 노예가 되었는데, 어떻게 자신이 서 있는 곳에 풍성하고 소중한 진짜 세계가 펼쳐질 수 있겠는가?

 

 

 

 

    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

                               -김선우,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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