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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고소공포

by 달빛나리는 2020. 10. 16.

속리산 제2봉. 문장대.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대학 동기놈이 있었는데, 언젠가 속리산 문장대를 오르던 중이었더랬다. 정상 휴게소를 지나 마지막 오르막 계단 앞에 주저앉아 허옇게 질려 있던 녀석을 보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악으로 깡으로, 동기사랑 어쩌고 이런 구호들이 활개를 칠 때여서였기도 했지만, 초점 잃은 눈빛 안에서 올라야 한다는 의지 비슷한 걸 보았던 거였다. 끌고 밀고 해서 어찌어찌 꼭대기에 도달했는데, 그 멋진 풍광을 옆에 두고도 아래에서 그랬듯, 시선은 자신의 발끝에서 떨고 있었다. 고소공포증. 꽤 지난 기억임에도 아직도 계속 낯설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두 공기, 세 공기가 아닌 ‘한 공기의 사랑’이다‘EBS CLASSⓔ’와 ‘철학자 강신주’의 콜라보레이션살면서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강!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

www.yes24.com

인식된 글자는 힘이 있는 듯, 요즘 '연(緣)'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 잡아 뭐에든 연을 이으려 하고 있다. <ebs 명강: 강신주 편>을 참 절절히도 보았다. 16강을 놓치지 않으려 알람까지 맞췄었으니(그러고 보니 그 시간이 22h30m이었구나) 출간 소식이 반가웠을 수밖에. 그리고 조금 전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애지중지(愛之重之)하여 자중자애(自重自愛)하기'를 바라 마지않는 아이가 있다. 단수인 까닭은 유일함보다 간절함의 의미가 커서이다. 그 많은 연! 중에서 아낌의 장면에서 계속 떠오르는 건, 마치 심연의 우물에서 계속 상기되는 건, 앞서 언급한 고소공포이다.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였지만 야경이었고, 분위기에 휩쓸릴 법도 했고, 또 위에 그 동기놈이 겹쳐 보여서, 우격다짐으로 팔을 잡아 끌어내었었다. 왜 늘 그 순간으로 귀결되는지. 아이에게 어떤 벽을 넘길 기대했는지.

그래서일까. 강좌 후반부의 '물망물조장(勿忘勿助長)'이 너무 무겁다. 그렇다. 아끼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너를 잘 알아서 조장하지 않기를. 그래서 앎의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걸까. (문제는 나의 눈이 너무 작아, 네 눈부처가 안 보일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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