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즈음의 일이다. 청주로 거처를 옮기고 봄 어느 때 대청댐에 갈 일이 있었다. 자동차 배터리가 걱정되었기에 드라이브나 겸하잔 생각이었다. 대학 시절에 하이킹 코스였던 까닭에 낯설기도 하도 반갑기도 하고 그랬다. 폭이 넓어진 도로가 그랬고, 중간 지점 쉬어 가던 고가도로가 그대로라 그랬다. 공군사관학교 앞에선 동창 녀석도 떠오르고, 그를 좋아하던 동기도 떠오르고 그랬나. 문의마을 진입로 갈림길에 있던, 무얼 파는진 잊어버린 허름한 가게도 떠오르고 관광단지 아래 솜사탕과 번데기 노점의 왁자지껄한 모양새도 들린다. (요즘 부쩍 의성어와 의태어, 과거형과 현재형의 경계가 흐릿하다.) 십 년도 더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만 스쳐 갔던 상당산성을 산성마을 주차장까지만 다녀오기도 했다. 산행하기엔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주거래 마트를 홈플러스에서 이마트로 바꿨다. 대청댐이든 이마트든 외곽 순환도로를 탄다. 한가한 도로 위로 야생동물을 위한 굴다리를 두어 개 지난다.
운전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어가니 조금 시야가 트였던 걸까. 산등성이 아카시아는 놓쳐도 저 멀리 지평선에 흐르는 구름 정도는 이제 여유가 있다. 뚜벅이의 시점과는 사뭇 달랐다. 차 안에선 정속 주행의 속도감이 면허 시험장의 20km/h처럼 느껴지고, 1km 앞은 100m 달리기 결승선 만큼의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이젠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보행자 신호가 아닌 차량 깜빡이를 본다. 그저 지나가던 희고 검은, 크고 작은 물체였던 자동차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 운전자가 누구인지도 신경 쓰인다. 전과는 다른 흐름이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젠 다르게 읽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외버스는 종일, 그리고 오래 타야 했다. 그래서일까, 창밖으로 흐르는 경관에 생각 없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늘빛도 좋았고, 태양에 물든 들녘 빛도 좋아했다. 의식의 고리가 과거 어느 시점에 닿을락 말락 하는 몽롱함이 좋다. 운전대를 잡고 배차시간에서 자유로워진 길 위에서, 4차로 정면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나는 그러한 경치를 옆으로 지나가고만 있었다. 풍경이 앞에 놓이니, 측면의 시공간과는 다른 체감이다. 여태 이걸 모르고 살았으니 아까웠고 억울했다. 마치 처음 안경을 맞추고 길 건너 가게 간판의 전화번호가 읽혔던 감격과 비슷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도 각자가 볼 수 있는 양이 다르단 건 알았지만, 그 때문에 감동의 폭도 달라질 수 있음을 왜 연결 짓지 못했을까. 시야가 닿는 만큼 공감할 수 있고, 시선이 머무르는 만큼 깊어지겠지. 세상은 아직도 새롭기만 하다.
전에는 정류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었다. 시외버스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기 전, 또는 열차 시간을 기다리며, 무료함을 녹여내곤 했다. 오가는 낯선 이를 배경으로 그들의 머릿속을 내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시멘트 틈 사이의 들풀을 B-612에 피어난 장미처럼 보았다. 대합실이라는 공간은 어느 넓은 세계 위의 한 점이 되었다. 여기서 저기로 이때서 그때로 옮겨가는, 지도 위의 실선이 되지 못한 점선을 연결하는, 실핀 같은 한 점. 그래서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이 좋았다.
운전을 하니 점선이 실선이 되어 거미줄처럼 뻗어가는 느낌이다. 시간에 묶이지 않으니 인식의 경계가 또렷이 넓어진다. 원하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 하는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전에는 그러한 문장은 관념 밖에 존재했다. 장시간 운전에 피로했지만, 소쇄원 장자도, 마곡사 무량사, 독립기념관이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보다 더 걷게 되었다. 걸을 수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걷는다는 행위가 수단이 아닌 유희가 된다.
집에서 연구실까지 1km가 딱 떨어진다. 정문에서 도서관까지 동서로 뻗은 청람대로라 하는 이 길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당당하다. 우리 학교 단풍은 후문으로 먼저 왔음을 모르고, 추석 연휴 며칠 사이에 순식간에 노랗게 물들어 버린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주말에 비가 와서 은행잎 소복이 쌓인 월요일, 어느 학부생이 셀카놀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손꽃받침을 하기도 하고, 낙엽을 발끝으로 차올리기도 하면서.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거리에서 먼저 눈이 마주쳤는지 자연스레 반대편으로 건너가 후속편을 찍기 시작했다. 여주인공의 들뜬 감상에 공감하기엔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그 잎이 덮어 주는 모양새가 마치 지뢰찾기 같았기에, 나 역시 어쩌다 보니 건너가게 되었다. 단지 가깝다는 명쾌한 이유 하나로 여태 늘 남쪽 길로 나녔는데 웬걸, 이쪽 세상은 햇볕도 따땃하고 보도블록도 은행 얼룩 없이 깔끔했다. 속았다는 허탈함과 치사하다는 원망으로 길바닥에 괜스레 발길질을 해 보았다. 내 공간의 경계는 겨우 도로 폭조차 넘나들지 못했던 거였다. 겨울이 지나가는 아직도, 그늘진 세상에선 그때 떨어진 은행이 도독, 밟힌다.
지금은 날이 추워 그만두었는데 볕 좋은 날에는 학교를 산책한다. 실과 선생님들이 돌보는 온실과 텃밭을 지나 대운동장을 돌아서 도서관 뒤로 돌아 외톨이 나무까지가 정석이다. 꽃잔디 위에 노니는 아가들, 아이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 보면 흐뭇하거나 부럽거나 그런다. 가끔 천문대 샛길이나 기숙사 옆으로 크게 돌기도 한다. 나무 냄새, 흙냄새만으론 형용하기 어려운 숲 냄새가 좋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소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잊었다. 목적 없이 걷고 싶다. 눈길 가는 대로 머물고 싶다.
이러한 생각들. 잡념들이 일 년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무언가 깨달음을 줄 듯하여 사고의 지분을 챙겨 주었다. 하지만, 확실히, 머리가 굳고 생각이 무디어졌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이미지에서 '눈-너비'라는 상징이 떠올랐다(학교 곳곳에 이런 소스가 차고 넘친다). 눈높이가 외적 강제라면 눈너비는 내적 증폭일까. 높이가 권위라면 너비는 투쟁인가. 사람은 2차원의 길짐승과 3차원 날짐승 사이 어디쯤일 텐데, 4차원을 논할 수 있는 건 높이에서 비롯했을까 너비 덕분일까. 이러다 보니, 또 부끄럽고 초라해졌다. 아무래도 난 스물이 넘어서야 눈너비가 확 트이게 되었는데, 강제적인 것이라 영 실속이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듬성듬성 빈 공간이 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차라리 거미줄이면 비움의 미덕이 있을진대, 솜사탕 같다. 뻥튀기도 아니고 이게 뭐람. 역시 아무래도 대학 시절을 덜 치열하게 살았나 보다. 이제사 일을 쉬고 나니 빈 구멍의 경계가 오히려 더 또렷해진 기분이다.
'송곳'에서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라고 했다. 특히 지난 두어 해, 어쩌다 보니 외연이 넓어졌다. 내 안을 돌보고 싶다. 밀도 높게 꽉 채워서 옴짝달싹 못 하게 안아주고 싶다. 논산에서 이사하기 전에 길옆에 버려진 곰인형을 보았다. 비를 머금고 푹 숙인 고개가 와닿았다. 무지렁이가 된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이젠 더 진해지자. 더욱 진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