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을 오가는 학교 정문 앞 사거리 횡단보도는 30초 신호를 받는다. 요즘 등교길인지 출퇴근길인지 모호한 그곳에 붕어빵이 등장했다. 발밑에 떨어진 은행 열매와는 시선을 잡아끄는 동기가 다르겠지만 찬 바람이 불어야 등장하여 제 몫을 해낸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구나 싶다. 이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누군가의 손에 들린 풀빵인지 잉어빵인지 모를, 창밖에서 훅 날아든 구수함과 달콤함이 섞인 그 냄새가 무척 자극적이다. 아직 지식이 얕아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시각보다는 덜 즉각적이지만 더 근원적인 이 후각이 나의 순수기억을 건드렸다.
할아버지는 칼국수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옛날 적당히 햇볕이 좋은 날이면 어머니는 마루에서 홍두깨를 미셨고, 나는 밀가루 나풀거리는 그 옆에서 덩어리가 사리로 변해가는 모양새에 마냥 신기해하였다. 아버지는 빵을 좋아하신다. 맛 때문인지 적당히 허기를 달랠 수 있다는 필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고향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일상처럼 제과점에 들른다. 나는 무얼 좋아하나? 아니, 떠올려 보면 무엇이더라도 정말 '맛'에 감탄하며 즐겨 찾으려 애썼던 음식이 있나 싶다. 오래 나와 살아서일까. 요리를 귀찮아해서일까. 허기진 포만감은 참 싫어하는데, 또 은근 식탐은 있다. 이것도 나의 욕망 어딘가와 닿아 있겠지.
그리고 예고 없이 날아든 그 냄새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밑도 끝도 없는 그 추억은 어머니가 계란 노른자를 분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난 분홍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흰자에 거품을 냈는데, 동생과 누가 더 빨리 단단하게(머리 위로 뒤집어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으면 합격) 완성하는지 경쟁했던 것 같다. 전기밥솥에 노랗게 익어가는 빵 내음이 떠오른다. 갈색으로 바삭거리는 껍질을 떼어 내 먹으며, 한 끼 식사가 되지 못하고 간식에 그침에 안타까워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밥솥으로 지은 빵은 늘 조금 모자랐다. 그리고 내가 하던 짓에 머랭치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즈음 나머지 장면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마치 상징계에 포섭되지 못해 실재계의 무의식으로 잠겨 들 듯.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혹 먹고 싶은 걸 물어보면, 두부 대신 계란빵을 이야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