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 수업이다. 그리니 편견이 가득한 눈으로 읽어 주길 바란다.
가로 열은 정책 참여자 1~0번이다.
-- 1번과 2번은 전체를 움직이는 흑색(黑色)분자이다.
-- 3번은 고민, 걱정, 근심, 비판 없는 '난 찬성~'의 목소리.
-- 4번은 마찬가지로 '난 반댈세~'의 목소리다.
-- 5번은 대세를 따르겠다는, 경청하는 듯, 아닌 듯한 녀석.
-- 그리고 0번은 어디에나 있는 무조건 기권하는 1명으로 하자.
(처음 이 표를 만들 때는 편의상 1/10명을 상정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정말 열에 하나 정도는 꼭 그러하여 굳이 수정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세로 행은 각 상황(투표 결과)을 가정한다.
-- A의 상황이다. 벌써 찬성이 4표를 먹었다. (5는 1,2의 큰 목소리를 전체 의견으로 착각한다.) 과반수 가결을 위해선 2표가 더 필요하다. 재미있다. 10명의 결정은 오롯이 중간 4명의 선택으로 좁혀졌다. 그래서 1,2번은 이런 주장을 한다. 한 명이 기권이니 과반은 4.5명 아닌가. 1과 2는 똑똑하다. 나머지 넷 중 한 명의 동조만 얻으면 된다는 불확실함 대신, 합심하여 0번을 늘린다.
-- B다. 여차저차하여(무관심, 환멸, 선동, 분열 등) 기권이 둘로 늘었다. 야호. 이제 나머지가 모두 반대해봤자 4:4 동률이다. 말했듯, 1과 2는 똑똑하다. 찬반이 같다면 일단 해 봅시다. 혹 실패하더라도 다음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겁니다. 문명은 움직이는 방향으로 진보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6,7,8은 헷갈린다. 모두가 자신처럼 고민 끝에 결정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책하거나, 다들 어떻게 된 것 아니냐며 혼란에 빠진다. 어느 쪽이든 상황은 C로 흘러가기 쉬워졌다.
-- 이런. 결국 C까지 와 버렸다. 기권이 셋이다. 이제 뭘 하든 1과 2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1,2의 선택이 곧 모두의 결정이다. 이제 다수결이 무너진다. 아니, 다수결만이 남았다. 사라진 건 숙의하는 시간. 처음부터 말했듯 1,2는 불안정성이 싫다. 그리고 똑똑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0이 늘어간다는 걸 안다.
-- D는 보고 싶지 않다. 그나마 모양새를 갖춘 민주적 소통과 투표의 하한선 70%가 깨졌다. 가장 나쁜 者을 찾아보자... 5번. 참여하는 척, 노력하는 척, 관심 있는 척하면서 경계를 넘나들며, 이득의 상황에서 자기 몫을 챙겨가고 손해에는 책임 없다며 발 빼려는 者. 0번이 이용당해 처량하다면, 이 者은 박쥐처럼 동조한다. 차라리 3,4는 지조라도 있지. 시민은 선택을 공부하며 고쳐가지만, 백성은 무책임한 마음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 정작 의견을 제시한 건 아직 두 명뿐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 우리 사회에는 5번이 너무 많다. 그래서 투표일에 임박하면 여론조사도 공개하지 않잖아.
정말 생각해봐야 할 것. 기권도 의사 표현의 권리라는 모순된 주장이 있다. (기권을 통한 권리 행사로 투표율을 낮춰 선거 자체를 무효로 돌리려는 특수한 예외가 있긴 하다.) 고대로부터 참정권은 의무의 보상이었고, 의무가 없는 자의 다른 이름은 노예였다.
수업 끝.
저 PT는 학부시절 품었던 의문을 주워담아 7, 8년 전 토론 수업에서 처음 만들었다. 그때는 치약 볼 때마다 떠올리라고 농담 반 섞어 20-80論이라 소개했었다. 이제는 흑색분자는 둘이 아닌 한 명으로 조금 수정해야겠다. 좀 더 까만 녀석이 이런 생각을 한 거지. 굳이 둘이나 필요 없겠다. 어차피 2는 내게 종속되어 있으니까. 피케티가 그랬잖아. 1%가 파이의 20%를 먹고, 10%가 절반을 가져가는 시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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