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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뉴스 싫어

by 달빛나리는 2020. 12. 2.

 

2019. 11. 28. MBC 뉴스데스크 中

 

 

챙겨 보는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는 MBC가 유일하다. 그런데 뉴스가 정보를 다루고 전달하는 방식,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라, 요사이 볼 때마다 울화가 솟구친다. 미디어의 자격도 없는 타 방송사로 갈아타기도 뭐해서 한숨이다.

 

 

말 꺼낸 김에 매체언어 수업이다. TV 화면의 구도를 잘 보자.

 

 

1994. 3. 19. KBS 9시 뉴스 中

 

학부 때, 뉴스의 저 구도를 '바스트 샷(Bust Shot)'으로 배웠다. 시청자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느낌을 주는 것을 의도한다고 했다. 적당한 친밀감으로 거부감을 줄이고, 또 적당한 몰입감으로 청자를 TV 앞에 묶어 둔다고 했다. 대개 뉴스 꼭지의 헤드라인은 1사분면에 위치한다. 이때 앵커는 정보의 전달자 역할을 한다. 완벽한 문어체를 구사한다. 머리칼 하나 흐트러짐 없다. 전달하는 텍스트마저 무미건조하게 가공할진대, 앵커의 감정이 드러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아나운서는 개인을 지우고 정보 전달자는 곧 뉴스 자체가 된다. 이러한 장치가 세련될수록 시청자는 사실 전달에 충실한 언론이라 생각하며 만족한다.

 

 

 

The Newsroom

Learn more about the HBO series The Newsroom.

www.hbo.com

그 사이, 이런 일이 있었다. TV 해상도가 높아졌다. 전파에 싣는 정보량이 늘었다. 자연히 한 화면에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HBO 드라마 뉴스룸이 있었다. 그리고 손석희의 뉴스룸이 있었다. 대놓고 관점과 분석을 기치로 '다른' 뉴스를 표방했었다. 인지도가 먼저였는지 공신력이 뒤따라서였는지 아무튼 같은 종편들과 궤를 달리했고, 지상파가 오히려 아류가 되었다. 그리하여 뉴스룸식 화면 구도가 이제 표준이 되었다.

 

 

 

2020. 11. 24. MBC 뉴스데스크, 정치적 참견 시점 中

 

아나운서의 입에서 비속어와 비표준어의 경계에 있는 어휘가 들릴 때마다 깜짝 놀란다. '-ㅂ니다'의 격식체는 내던지고 '-요'의 어미 선택이 잦다. 형용사가 풍부한 문장을 구사한다. 예전엔 사실을 논리로 설명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공감을 내세워 설득하려 한다. 피해 사실보단 얽힌 사연을 더 당연스레 다룬다. 클로징멘트에서도 힘겨웠던 사적 의견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앵커에게 화면을 넘겨받거나 이원 중계에서나 등장하던 기자가 이제 앵커와 한 화면에 선다. 기자의 위치가 격상된 듯하지만, 나는 앵커의 역할 변화로 읽힌다. 데스크에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앵커가 일어났다. 심지어 등을 보이기도 한다.  앵커가 TV에서 뛰쳐나와 시청자 옆에 나란히 앉는다. 그리고 뉴스를 같이 본다. '봐봐, 잘 설명해 줄게, 내 얘기 들어봐, 이게 뭐냐면...' 하면서. 방송사 혹은 뉴스 그 자체였던 앵커는 이제 시청자의 편에 선다. 이런 면에서 ㅇ아나운서는 탁월하다. 눈썹과 콧구멍의 움직임, 턱의 전후 움직임과 약간 앞으로 기운 상체의 조절, 그가 심각하면 심각해지고, 그가 중요하다면 중요해진다. 가끔은 시청자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마치 화자에게 더 묘사해 달라며 조르는 눈먼 청자의 풍경화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다. 애초에 호모 사피엔스란 종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생물이니까.

뉴스의 구도가 변했다. 화면을 경계로 청자와 대화하던 화자가 선을 넘어 청자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간사하다. 앵커가 들려주는 텍스트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청자는 자신이 정보를 읽고 있다고 착각한다. 예전 뉴스가 주관적 정보를 객관적으로 포장했다면, 요즘엔 주관을 가득 뿌려 비빔밥을 만든다. <1984>와 <멋진 신세계>만큼의 간극이다.

간혹 애처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젠 사람들이 TV 앞에 앉지 않으니까. 그래서 점점 유튜브를 닮아가려 한다(펭수는 보도국 소속이 아니잖아). 우리가 굳이 지상파 메인 뉴스를 챙기는 까닭은 시청률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장년층 취향을 집중 공략한 예능의 노선을 칭찬한다. TV를 볼 이유가 없어졌어. 즐겨 듣던 라디오 채널을 협찬과 아이돌에 빼앗겼던 시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씁쓸하진 않다. 그땐 정말 내 안 깊숙이 묻어버린 공허함이 있었는데. 뭐, 다 옛날이야기.

 

수업 끝.

 

그런 의미에서 올해 수능특강에 설득의 3요소가 언급됨에 애증을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화자의 공신력이라는 개념으로 각 이성적, 감성적, 인성적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더라. 거지같던 격률이 빠짐에 기뻤고, 교육과정의 적용이 늦어 작년 시험에 답을 못함이 슬펐다. (처음 저 개념을 접했을 때부터 늘 파토스와 에토스 순서를 헷갈려 했고, 로직-페르소나-에로스란 단어와 연결한 후에야 겨우 극복 가능했다.) 오늘 이야기의 발단은 작년 수능 완성이다. 문제를 풀며 이 장면이 떠올랐던 거였다. JTBC 팩트체크, 안나경 앵커와 이가혁 기자의 대화. 

 

 

2020학년도 EBS 수능완성 실전모의고사 2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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